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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교구장: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

현 교구장: 암브로시오스 조그라포스 대주교

교회의 시작

“하나이며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정교회는 1900년에 한국에 전파되었다.
그해 1월에 러시아인 흐리산토스 세헷콥스키 수사 신부가 직장 때문에 한국에 와 있는 러시아 정교회 교인들과 러시아에서 근무하던 중 정교회 교인이 된 한국 사람들의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서울에 도착했다.
1903년 흐리산토스 신부는 서울에 성당을 마련하여 이를 성 니콜라스 성당이라 명명하고 그곳에서 의욕적인 선교 사업을 시작했다.
정교회의 복음에 대한 권위 있는 가르침과 그 예배의 풍부함과 장엄함, 그리고 신비로운 분위기는 많은 한국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교회의 수난

그러나 한국에 들어온 정교회는 그 첫 출발부터 끊임없는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흐리산토스 신부가 한국에 온 후에 발발한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전쟁에서 1904년 러시아가 패하자 일본은 한국에 있던 러시아 인들에게 강제 출국 명령을 내렸다. 그리하여 흐리산토스 신부와 그의 러시아인 협력자들은 러시아로 돌아가야만 했으며 갓 형성된 한국 정교회의 작은 양떼는 목자를 잃은 고아가 되고 말았다.

러시아의 두 번째 선교사업은 빠벨 이바노프스키 수사 신부에 의해 다시 시작되었다. 그는 1906년부터 1912년까지 한국에 머물면서 한국의 정교회에 새순이 돋아나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던 1910년부터 1945년까지 한국의 정교회 신자들은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당했으며 혹독한 박해를 받았다. 한편 러시아에서는 1917년 혁명이 일어나 볼셰비키 정권이 수립되었다. 이로 인해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하게 된 러시아 교회는 더 이상 지원을 해 줄 수 없게 되었다고 한국의 정교회에 통보했다. 이제 한국의 정교회는 러시아로부터 지원도 끊기고 다른 지역의 정교회와의 대화 수단도 전혀 없는 상태에서 생존을 위해 처절한 투쟁을 시작해야만 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당시 한국의 유일한 사제였던 알렉세이 김의한 신부가 북한에 납치된다. 또한 전쟁 중에 떨어진 포탄에 의해 서울 성당이 크게 파손되었다. 얼마 안 되던 신도들은 뿔뿔이 흩어져 피난을 가버리고 겨우 타오르기 시작한 한국 정교회의 작은 불꽃이 사그라질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교회의 부흥

그러나 머지않아 기적이 일어났다. 하느님께서는 한국 정교회 교인들의 희생과 흔들림 없는 믿음에 상을 내리시며 전쟁의 폐허 가운데에서 한국 정교회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셨다.
한국 전쟁에 참여한 그리스군의 종군 사제였던 안드레아스 할끼오뿔로스 수사 신부의 따뜻하고 지칠 줄 모르는 보살핌 덕분에 한국 신도들은 서울에 다시 모였고, 전쟁고아들은 보호를 받았으며 성당이 재건 되었고 수백 명이 세례를 받았다.

한국을 떠나기에 앞서 안드레아스 신부는 한국 신도들 중에서 천거된 보리스 문이춘 신부를 1954년 1월 일본 도쿄의 주교부에서 사제 서품을 받도록 주선해 주었다.
한국에서의 정교회 부흥은 정말로 멀고도 험난한 길이었다.

보리스 문이춘 신부와 그의 협력자들의 초인적인 노력으로 한국 정교회의 “작은 양떼”는 유지되었으며, 한국 정부가 국가 재산으로 편입시키려 했던 교회의 재산도 지켜졌으며, 1968년에는 현재의 위치에 역시 니콜라스 성인에게 바쳐진 비잔티움 양식의 웅장한 성당이 건립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정교회는 교회 조직상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하여 한국의 정교회는 많은 기도와 심사숙고 끝에 1956년 성탄절에 소집된 신도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세계 총대주교청 산하로 들어갈 것을 결의하고 세계 총대주교청에 허락을 구하였다. 세계 총대주교청은 이 요구를 받아들여 한국 정교회를 자신의 관할 하에 두었다.

이후 한국의 정교회는 세계 총대주교청의 산하 기관인 뉴질랜드 대교구에 속해서, 1975년부터 수사 대신부로 한국에서 대주교 대래 직분을 맡아오다가 1993년 보좌 주교로 승품된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주교의 보필을 받는 뉴질랜드의 디오니시오스 대주교의 사목을 받고 있다가, 2004년 4월 20일에 세계총대주교청이 한국에 대교구를 설립하기로 결정하여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주교를 초대 대교구장으로 선출하자 같은 해 6월 20일에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의 착좌식을 거행하였다.

축복 속에서의 발전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의 정교회는 여러 방면에서 성스러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기본적인 예배서들을 비롯하여 신학적인 책들과 영적 성장에 필요한 책들이 약 80여종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서울 대성당 건물 주위에 현재 대교구청과 선교관으로 사용되는 건물과 두 개의 소성당이 건립되었다.

한국 사제와 지도자들의 양성을 위한 신학원이 설립되었다.
부산, 인천, 전주, 양구군 팔랑리, 춘천, 울산에 성당이 건립되었다.

다니엘 나창규 대신부, 안토니오스 우종현 대신부, 스테파노스 황경수 신부, 알렉산드로스 한의종 신부, 바울로 권언건 신부, 예레미야 조경진 신부, 일라리온 정종혁 신부, 안토니오스 임종훈 신부 등 8명의 사제와 이사야 김현준 보제, 요한 박인곤 보제가 서품을 받았다. 그리고 한국에 거주하는 러시아인과 동유럽인들을 위해 2000년부터 테오판 김 수사 신부가 러시아에서 파견되어 사목하였으며, 테오판 신부가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에 의해 투바 공화국의 주교로 서품된 이후에는 로만 카브착 신부가 한국의 러시아인들과 동유럽인들을 사목하고잇다. 또한 신학박사인 암브로시오스 조그라포스 수사 대신부가 1998년에 그리스에서 파견되었으며 2006년에는 세계 총대주교청에 의해 질론의 보좌주교로 선출되었고 이후, 한국 정교회의 대주교로 착좌하였다.

서울 북동쪽에 위치한 경기도 가평군에 수도원이 건립되었고 현재2명의 수녀가 그곳에 거주하고 있다.

연령별로 교리 공부가 시행되고 있으며 학생들과 청년들을 위한 수련회가 조직, 운영되고 있다.전 교인들을 대상으로 빈곤자와 노인, 그리고 고아와 병자들을 지원하는 사업이 운영되고 있다.

부산 지역의 주민 자녀들을 위한 어린이집이 성모희보 성당에서 운영되고 있어 50여명의 어린이들을 돌보고 있다.

서울 대성당과 인천 성당에서는 자원 봉사자들에 의해 영어회화 교실이 운영되고 있고, 매년 여름에는 춘천 성당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영어 캠프가 열리고 있다.
북한의 조선정교위원회와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맺고 있으면서 평양 성 삼위 성당(정백 사원)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그 곳 정교회 신자들을 수차 방문하여 유대를 맺고 있다.
부산, 인천, 울산에서는 그곳에 입항하는 그리스 선원들을 대상으로 사목 활동이 펼쳐지고 있다.

1986년 극동 지방에서의 선교 사업을 관장하는 정교회 동방 선교회가 세계 총대주교청의 결정으로 서울에 설립되었으며 1996년까지 운영되었다.
바르톨로메오스 세계 총대주교님께서 1995년에 한국 교회를 처음 사목 방문하신 것은 한국 정교회 교인들에게는 특별한 축복이었으며 영적 격려의 근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가 한국 정교회를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총대주교님께서는 이후 2000년과 2005년에도 계속 방문하셔서 한국 정교회에 대한 총대주교님의 특별한 사랑을 보여주셨다.

서울에 있는 선교관 건물에 신학원 강의실과 기숙사가 1995년에 증축되었고, 1996년에 신학원이 속성 과정으로 운영되었으며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에서 온 학생들이 강의를 들었다.
수료식 직전에 이들 중에서 네 명이 사제로, 한 명이 보제로 서품을 받았다.
부산과 울산에서는 러시아와 동유럽 출신 정교회 신자들을 위한 성찬 예배가 슬라브어로 거행되고 있으며 그들만을 위한 교리 공부가 별도로 진행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례 성사와 결혼 성사 등도 거행된다.

그리스로부터 온 자원 봉사자 성화 작가들이 서울, 부산, 전주, 울산 성당 및 두 곳의 소성당 그리고 수도원 성당과 묘지에 있는 성당에 성화를 그려 주었다.

2007년 11월 10일에는 서울 성 니콜라스 대성당 선교회관에서 성 요한 흐리소스톰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안식 1600주년 기념 국제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