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과 거룩성

먼저 유일하게 참으로 “거룩하신 분” 혹은 거룩하신 한 분은 하느님 자신이시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두어야 합니다. 성경은 “나 야훼가 너희 하느님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스스로 거룩하게 행동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 11:44, 19:2, 20:7)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사람은 하느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함을 통해서 거룩해지고 성인(聖人)이 되어갑니다.

거룩성 혹은 성인됨은 하느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사람에게 주시는 선물(은사)입니다. 하느님의 거룩성의 생명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노력이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성화 그 자체는 특별히 우리를 거룩성의 삶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육화하시고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시고 죽음으로부터 일어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화하시는 능력을 통해서, 그리고 성령의 친교를 통해서, 성 삼위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테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에서 성 바울로는 이렇게 제안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는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을 생각할 때 언제나 하느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누구보다도 먼저 여러분을 택하셔서 구원을 얻게 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거룩하게 해주셨으며 진리를 믿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여러분을 구원하시려고 여러분을 불러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받아 누리게 되었습니다.”(2 테살로니카 2:13-14)

성인들의 여러 범주

성 삼위 하느님의 역사를 통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인이라 불릴 수 있습니다. 특별히 초기 교회에서는 성 삼위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동안, 그들은 견진성사에서 성령의 날인을 받았고 대부분의 경우 곧이어서 감사의 성찬 예배에 참여했습니다. 동일한 정신으로 성 바울로는 그가 방문했던 교회들에 편지를 쓰면서 모든 신자들을 “성인들”(성도)이라고 부릅니다. 에페소 신자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는 “그리스도 예수를 진실하게 믿는 에페소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에페소 1:1)라고 말합니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그는 똑같은 표현을 사용합니다.(2 고린토 1:1) 성 대 바실리오스는 바울로는 존재 그 자체이시고 생명이시고 진리이신 하느님과 연합된 모든 이들을 향하여 말하는 것이라고 이 구절을 해석했습니다.(????에브노미오스 반박????, II, 19) 게다가 성 바울로는 골로사이 신자들에게 편지하면서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사람과 화해하셨고 “그래서 여러분을 거룩하고 흠없고 탓할 데 없는 사람으로서 당신 앞에 서게 하여주셨습니다.”(골로사이 1:22)라고 썼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과연 누가 성인이라 불릴 수 있을까요? 오늘 교회에 의해 성인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많은 정교회 신학자들은 성인들을 여섯 가지의 범주로 분류합니다.

  1. 사도들 : 그들은 하느님 말씀의 육화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복음을 전파한 첫 번째 사람들입니다.
  2. 예언자들 : 그들은 메시아의 오심을 예고하였고, 그분에 대해 예언하였습니다.
  3. 순교자들 :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고 두려움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들이요 인류의 구원자로 고백했습니다.
  4. 교회의 교부들과 주교들 : 그들은 말씀과 행동으로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설명하고 수호하는데 탁월했습니다.
  5. 수도자들 : 그들은 사막에 살면서 최대의 노력을 경주하여 영적인 단련(아스키시스)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완전에 자신을 헌신하였습니다.
  6. 의인들 : 세상에 살면서 성직자로 혹은 평신도로서 가족과 함께 모범적인 삶을 영위하여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의 모범들이 되셨습니다.

이 범주들에 속하는 각각의 성인들은 모두가 자신만의 고유한 부르심과 특징들을 가집니다. 그들은 모두 “믿음을 위해 선한 싸움”(1 디모테오 6:12, 2 디모테오 4:7)을 싸웠습니다. 그들 모두는 자신의 삶 속에 “정의, 경건, 믿음, 사랑, 인내, 온유”(1디모테오 6:11)를 적용하고 실천했습니다.

신화(테오시스)의 개념

성인의 궁극 목표는 하느님을 본받는 것 신화(theosis, deification)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7세기 고백자 성 막시모스는 성인들은 신화에 도달한 사람들이라고 썼습니다. 그들은 영혼의 비본성적인 발전, 즉 죄를 피했고 생명의 본질적인 방식을 따라, 다시 말해 창조된 본성에 따라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항상 하느님을 행해 돌아서서 그분만 쳐다보았고, 이렇게 해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과 완전한 연합을 이루었던 것입니다.(????신학에 대하여????(On Theology), 7. 73)

여기서 우리는 성인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의 “친구들”이라는 사실을 언급해 두어야만 합니다. 둘째, 탁월한 신심과 하느님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을 통하여, 그들은 하느님을 기쁘게 하였고 그래서 영혼과 몸 모두 “성화”되었고, 마침내 이 세상에서부터 영화롭게 되었습니다. 셋째, 그들은 이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 간 후에 하느님의 품에 받아들여졌습니다. 넷째, 그들 중 많은 분들은 이 세상에서 사시는 동안이나 혹은 그 후에 놀라운 기적들을 일으키는 특별한 “은총” 혹은 “호의”를 얻었습니다. 다섯째, 그들은 이 세상에서 살면서 하느님의 영광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그들 자신의 완전을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중보하는 특별한 은사를 부여받았습니다. 이 중보의 은사는 그들이 “성인들의 통공(친교)”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로부터 비롯됩니다. 그들은 지상의 그리스도인들과 기도와 선행을 공유합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영화롭게 된 성인들과 아직 지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지속적인 상호작용과 연합성이 존재합니다.

성인들의 중보

그리스도인들이 성인들의 기도와 그들의 중보를 요청하는 것은 이미 신약성서에 나와 있습니다. 성 바울로는 에페소, 테살로니카, 골로사이,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에페소 6:19, 테살로니카 5:25, 골로사이 4:3, 로마 15:30-31) 매번 리뚜르기아를 거행할 때마다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께 지금 하늘에 살아계신 모든 성인들의 우리를 위해 드리는 기도와 중보를 받아달라고 기도합니다. 교회의 교부들 또한 모든 성인들의 기도와 중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성 대 바실리오스는 그의 한 편지에서 그가 사도들과 예언자들과 순교자들의 중보를 받고 있으며 그들이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를 원한다고 명시적으로 썼습니다.(편지 360) 그때 그리스도를 위한 순교의 고통을 당한 40명의 순교자들에 대해 말하면서, 성 바실리오스는 “그들은 강렬한 기도 안에서 인류 모두의 공통된 친구, 강력한 대사요 협력자”라고 강조합니다.(8장) 니싸의 성 그레고리오스는 성 테오도로스 순교자에게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우리 모두의 임금이신 우리 하느님께 뜨겁게 기도해 주시라”고 간청합니다.(성 테오도로스 순교자 송사) 유사한 표현이 신학자 성 그레고리오스가 성 키프리아누스에게 바치는 송사에서도 사용됩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스는 성인들은 하느님 앞에서 대담하기(파레시아) 때문에 그들의 중보와 열렬한 기도를 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창세기 44:2, 율리아노스와 유벤티노스 그리고 막시미노스에게 바치는 송사 3)

성인들에 대한 공경

정교회에서 하느님께만 드리는 예배(라트리아)는 “어떤 존귀함을 부여받은 모든 사람에게 바쳐지는” 사랑과 존경의 영예, 심지어 경배(프로스키네시스)와 완전히 다릅니다.(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스, ????설교????, III, 40) 정교회는 성인들을 “완전케 해주신” 하느님께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성인들을 공경합니다. 신신학자 성 시메온이 썼듯이, “하느님은 예언자들의 스승이시고, 사도들의 동역자시고, 순교자들의 능력이시고, 교부들과 교사들의 영감이시며, 모든 성인들의 완전이십니다.”(????교리입문(Catechesis)????, I)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 내내, 그리스도인들은 관습적으로 순교자들이 죽은 장소에서 모였습니다. 또 그들의 기리며 성당을 지었고, 그들의 유해들과 공적을 기념했으며, 다른 이들이 본받아야할 모범으로 제시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아주 흥미로운 정보가 ????폴리카르포스의 순교????에서 흘러나옵니다. 그것에 따르면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성인들의 유품들을 지극한 공경심으로 한데 모았고 그것들을 “보석보다 더욱 값진 것으로” 공경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또한 순교자들이 죽은 날에 모여 “그들의 새로운 탄생의 날, 그들이 하늘에서 새로운 생명에 들어가게 된 이 날”을 경축했다고 합니다. 오늘날까지 정교회는 성인이 안식하신 날에 모여 예배드리고, 또 그들의 이름으로 성당을 지어 봉헌하고, 그들의 성해와 이콘에 특별한 존경심을 표하는 전통을 유지해나가고 있습니다. 7차 세계 공의회(주후 787년)는 교회의 관습을 요약하면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우리는 우리 주 하느님을 예배하고 공경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의 훌륭한 종이었던 분들을 존귀하게 여기고 공경합니다. 그들은 우리를 만인의 임금이신 하느님의 친구로 만들어주시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축일과 성인들을 공경하는 예식은 4세기에 이르러 공통된 관습이 되었습니다. 소아시아의 강그레아에서 열린 공의회(325-381년 사이)의 스무 번째 규칙(Canon)은 성인들의 축일을 거부하는 자를 정죄합니다. 교회가 사도들, 예언자들, 순교자들에게 보여준 평가와 공경은 너무도 대단해서 그들의 영적인 성취와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묘사하는 많은 글들이 등장했습니다.

????폴리카르포스의 순교????와 더불어 성인 공경의 또다른 정보들이 북아프리카의 소도시 스킬리(Scilli)의 순교자들의 순교 행적(2세기 말)에도 나와 있습니다. 성 아타나시오스의 ????성 안토니오스의 생애????, 성 대 바실리오스의 “40인 순교자에 대한 설교”, 니싸의 성 그레고리오스의 “성 테오도로스에 대한 설교”,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스가 교회의 순교자들에 대해 행한 많은 설교들도 성인 공경의 원천 자료입니다.

* 다양한 성인들과 순교자들의 성해

초기 그리스도인들과 교부들은 특별히 순교자들의 성해에 대단한 공경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미 언급한 문헌들 이외에도, 교회사가인 케사리아의 에브세비오스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고통당한 이들은 언제나 살아계신 하느님과의 친교 속에 있다”고 말합니다.(????교회사????, 5:1) ????사도 규범????(Apostolic Constitutions, 5:1)에서 순교자들은 “주님의 형제들” “성령의 그릇들”이라 불립니다. 이것은 교회가 순교자들의 성해에 기울인 특별한 영예와 공경을 설명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성 대 바실리오스, 니싸의 성 그레고리오스, 예루살렘의 성 끼릴로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스는 순교자들의 성해가 “영적인 은총으로 충만”하고, 심지어 그들의 무덤도 특별한 “축복”으로 충만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이러한 교부시대의 관습들은 오늘날까지 여전히 계속 이어져 왔고, 세상 곳곳에서 온 사람들이 순교자들과 성인들의 성해가 모셔져 있는 성당들을 방문합니다. 또한 고대 전통에 따르면, 새로운 성당은 지성소의 제단에 성해를 안치하는 예식을 통해 봉헌 축성됩니다.

과거에 교회 성인들의 이콘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콘에 부여되는 특별한 공경에 대해 대논쟁이 일어났습니다. 7세기 비잔틴 세계에서 시작된 이콘 파괴 논쟁은 온 교회를 뒤흔들었습니다. 그러나 교회 교부들은 공경심과 영예는 “원형에게” 돌려지는 것이지 그리스도나 성인들에 대한 물질적 형상 그 자체에 돌려지는 것은 아니라고 분명하게 선언했습니다. 니케아에서 열린 7차 세계 공의회 4회기 기록은 이 점에 대해 특별하게 조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제일 먼저 참으로 하느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이시고 하늘 모든 권세보다 더 높으신 그녀를, 그리고 그 다음으로 거룩하고 천군 천사들, 그리고 복되시고 찬양받으시는 사도들, 영광스러운 예언자들, 그리스도를 위한 싸우신 승리의 순교자들, 거룩하고 하느님을 마음에 품으신 박사들, 그리고 모든 거룩한 사람을 공경하고 찬양하라고, 또한 그들의 중보를 구하고,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덕스럽게 살면서 만인의 전능하신 하느님과 친교하라고 가르쳐주신 주님과 사도들의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공경스럽고 생명을 주는 십자가의 형상과 성인들의 거룩한 유해를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거룩하고 존귀한 형상들을 받아들입니다. 하느님의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의 오랜 전통에 따라, 다시 말해 이것들을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가장 거룩한 교회들 안에, 하느님의 통치가 이뤄지는 모든 것에 그것들을 확립한 우리의 거룩한 교부들에 따라, 우리는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을 껴안습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이 공경스럽고 존귀한 형상들을, 다시 말해 우리의 위대하신 하느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의 형상, 그분께서 육신을 취하시어 우리를 모든 불경스런 우상숭배에서 구원하시고 해방시키시길 기뻐하셨던 흠 없으신 여인이시고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의 어머니의 형상, 또한 마치 사람의 모습으로 현현했던 거룩하고 형체 없는 천사들의 형상들을 존귀하게 여기고, 받아들이고 예를 다하여 공경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또한 찬양받으시는 하느님의 사도들, 하느님의 대변자인 예언자들, 그리고 고통 받으신 순교자들과 거룩한 사람들의 형상과 조상들을 공경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표상을 통하여 우리는 기억과 회상을 통하여 그 원형들로 인도될 수 있고, 그렇게 하여 그들의 거룩성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니케아 공의회 전후의 교부들????), vol 14, p. 541)

성인들의 축일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성인들이 안식한 날을 명명 축일로 삼아 모이곤 했습니다. 이러한 모임은 종종 성인의 무덤에서, 혹은 성인의 성해가 모셔지거나 혹은 성인과 관련하여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성당에서 이뤄졌습니다. 이러한 축일 기념 모임은 성인들을 기억했습니다. 신자들은 이런 축일 예배에 참여하여 공경받는 성인의 순교 행적을 칭송하는 추념 설교들을 듣고 큰 영적인 유익을 얻었습니다. 하나의 흥미로운 묘사가 있는데 그것은 소아시아의 셀류키아의 성녀 테클라와 그리스 테살로니카의 성 디미트리오스 추념사입니다. 교부들과 교회법은 이런 유형의 모임을 받아들였고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축제의 상업화는 강력하고 경고합니다.

정교회는 테오토코스 동정녀 마리아, 천사들, 그리고 세례자 성 요한에 대한 공경과 경배에 특별히 중요시합니다. 동정녀 성모 마리아에 관해서는, 에페소에서 열린 3차 세계 공의회(주후 431년)가 그녀를 공경하기 위해 테오토코스(하느님을 낳으신 분)이라는 칭호를 부여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성모님께 봉헌된 축일과 성가들 그리고 금식 기간(8월 1-14일까지)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성모님의 이콘은 지성소 뒷벽에 그려지는데, “하늘보다 더 넓으신 분”(플라티테라)이라는 제목이 붙습니다. 동정녀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간절하게 우리를 위해 중보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지극한 겸손과 순종으로 그리스도께 육신을 주셨고,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교회는 천사들이 형체 없는 존재들이고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믿습니다. 천사들은 불멸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본성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러합니다. 하느님 자신께서는 근원적이고 일차적인 빛이시라면, 천사들은 또한 이차적인 빛이라고 불립니다. 그들의 본성은 본래 변화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그리스도의 육화이후 천사들은 구원받았고 그래서 변화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교부들은 모든 신자들이 자신의 “수호 천사”를 가진다고 믿습니다. 천사들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끊임없이 성 삼위 하느님께 찬영과 영광을 돌립니다. 그들은 또한 사람들이 따라야할 모범이 됩니다.

정교회 성당의 이콘벽(성상벽)에 그 이콘이 모셔져 있는 세례자 성 요한은 그리스도께 세례를 베풀고 그분의 지상 강림을 준비한 예언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거룩한 삶으로 인해 순교의 고통을 당했습니다. 교회는 세례자 성 요한을 공경하는 다섯 번의 축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인들의 시성

정교회는 성인들을 “승인”하기 위한 어떤 공식적인 절차들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처음에 교회는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하신 이들을 성인들로 받아들였습니다. 성인들은 하느님의 은총 덕분에 성인입니다. 그들은 교회의 어떤 공식적인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글들을 읽고 그들이 일으킨 기적들을 목격한 그리스도교 백성은 그들을 성인들로 받아들이고 공경합니다. 세속 권력과 교회 권력에 의해 박해받고 유배당한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스는 백성들의 환호와 칭송을 통해 교회의 성인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성 대 바실리오스는 안식하신 직후 백성들에 의해 교회의 성인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최근, 여러 가지 남용을 피하기 위해, 세계 총대주교청은 거룩한 주교회의가 어떤 성인에 대한 대중적인 신심과 공경심을 “승인하고” 받아들이는 특별한 총대주교 회칙 편지를 발표했습니다. 우리 시대, 아토스 성산의 성 니코디모스(1955)가 바로 그러한 예입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 이래로 성인들의 책이나 순교행적 그리고 기적들에 대한 많은 감동적인 묘사가 보존되어 왔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시낙사리아(synaxaria)라고 부르는데, 이 말과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시낙스(synaxe)는 리뚜르기아를 거행하기 위해 성당에 모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로 이 모임 안에서 성인들의 생애가 읽혀졌습니다. 아토스 성산의 성 니코디모스는 18세기에 성인들의 시낙사리아를 편찬하였습니다.